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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 동네에 의한 동네를 위한 '동네정치'를 외치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만 뽑는 게 아니다. 다가오는 6 ·2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뿐만 아니라 동네 구석구석을 위해 뛸 시· 군· 구 의원도 선출한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중앙 정치판에서는 이명박 정부 심판론과 안정적 국정운영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유권자에게는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선거가 내 삶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동네의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동네에서부터 정치를 바꿔가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나타났다. 쓰레기봉투 값을 조정하고, 공동보육시설의 운영시간을 늘릴 수 있는 ‘동네 정치인’을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경기도 과천시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동네 후보’를 당선시킨 과천은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당선자 서형원 시의원은 주민과 함께 예산 심의를 했다. ‘주민과 함께하는 예산 워크숍’을 열어 불필요한 예산 35억원을 삭감했다. 주민들은 해외방송사에 내는 시 홍보비 1억여원, 체육대회 체육복 값 3500만원 등을 지적했다. 시의원 한 명으로 일구어낸 4년간의 ‘작지만 큰’ 변화를 체감한 과천 주민은 이번에도 동네후보를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 제공
“정치판의 뿌리부터 바꾸자”라며 나선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위)가 2월17일 시동을 걸었다.
강원도 속초시에서는 이미 동네후보 2명이 시의원 예비 후보자로 추대되어 예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대구시에서도 8명의 동네후보를 내겠다며 ‘풀뿌리대구연대’가 출범했다. 이처럼 동네후보를 주민이 직접 만들어보자는 모임은 광주시·대전시·경북 구미시·전남 나주시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일고 있다. 각각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풀넷)’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2월17일 발족했다. 풀넷에 참여하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는 “사람들은 정치나 선거 하면 큰 단위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치는 아래에서부터 꾸준하고 끈질기게 바꿔가야 한다. 풀넷은 지방선거에 나올 동네 후보 30여 명을 지원할 예정이다. 선거 이후에도 지속적인 풀뿌리 정치운동을 펼칠 수 있는 연대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우리 손으로 동네를 바꾸자”

직접 후보를 내지 않더라도 정책 제안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지역도 있다. 충남 천안시와 경기도 고양시가 그러하다. 천안의 복지 관련 시민단체인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복지세상)’은 2002년·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제안 운동을 했다. 진경아 국장은 “복지정책에 관한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시민 1000여 명이 모이니 후보자들도 부담을 느끼더라. 이후 당선자가 정책을 실천하는 걸 보며 선거 때마다 토론회를 준비한다”라고 말했다. 선거 이후 천안에서는 사회복지시설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가 생겼고, 유아 7명 정도를 위탁할 수 있는 ‘아동그룹홈’이라는 양육시설도 생겼다. 야권 연대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겠다며 뭉친 경기도 고양시의 ‘고양무지개연대’도 정책개발에 힘쓴다. “이 정책만은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꼭 관철시키자”라며 열린 2월23일 정책 토론회는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시민 50여 명이 자리를 메웠다. 발제가 끝나자 서로 질문하겠다며 손을 드는 등 ‘우리 손으로 동네를 바꿔보자’라는 열기가 넘쳤다.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명하다. 지역운동을 몇 년씩 해보니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생활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느꼈다. 엄경선 속초시의원 예비 후보자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예산 감시운동을 했는데 시민단체 활동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 행정에 직접 관여해 지방정치를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 2002년 고양시의원에 동네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김혜련씨는 “시의회는 40·50대 중산층 이상의 아저씨가 대부분이다. 그런 곳에서 육아·친환경급식 등 생활형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는 동네 정치인이 늘어난다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당공천제, 인물 부족이 걸림돌

하지만 동네정치가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도 있다. 2006년에 도입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그것이다. 2002년에 약진했던 동네후보가 정당공천제의 영향으로 2006년에는 대거 낙선했다. 당선된 동네후보는 15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관악구의원 중에는 2002년 시민후보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다 정당공천이 시작된 2006년에는 한나라당에 입당한 사람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당공천제를 바라보는 동네 현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의 김현 연구위원은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행사하니 기초의원들이 생활밀착형 의정활동보다는 중앙정치에 맞춘 행보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지역활동가는 “기초의원의 목줄을 지역 국회의원이 잡고 있다보니, 대구의 한 시의원은 지역 국회의원 부인 차 운전까지 해주었다고 한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8년 국회 지방자치발전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74%가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열린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관련 토론회 모습.
이에 대해 김충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역의 불만을 잘 알지만,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아 정당공천제는 6·2 지방선거에도 지속된다.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할 문제이지 정당공천제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없고,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공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로 뛸 사람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남우근 서울 ‘관악유권자연대’ 집행위원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 보니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정치 전면에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출마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활동이 자기 정치 하려는 거였냐’라는 힐난을 듣는 경우도 있다”라며 후보 발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금문제나 가족의 반대 등이 동네후보로 나서고 싶은 이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그래도 지역활동가들은 동네정치가 작지만 소중한 실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형원 과천시의원은 “정치가 큰 나무라고 한다면 기초의원은 실뿌리다. 실뿌리가 나무와 토양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처럼 기초의원은 주민과 정치를 소통시킨다. 숫자보다는 동네 정치인 한사람 한사람이 만들어낼 스토리와 변화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