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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관련 자료

지역을 바꾸는 열가지 희망 5 - 마을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호)

갈곡리공원 '타일벽화'의 특별한 사연

선거 때만 되면 각종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그 공약들을 잘 살펴보면, ‘내가 당선되면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겠다’는 투다. 유권자 여러분이 나를 뽑아주기만 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는 것이다.

나를 대신해서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 주고 좋은 정책들을 실시해 주겠다니 고마운 일이다. 물론, 공약 그 자체가 실현될 것인가 하는 의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공약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불쾌해질 때가 있다.

살기좋은 마을 만드는 게 정치인의 몫인가?


▲ 서울 은평구 갈곡리 공원에 있는 '타일벽화'. 쓰레기 더미가 쌓인 공원을 깨끗하게 만든 이곳 주민들이 참여해 만든 작품이다.

ⓒ 김병기


왜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내용과 선거 후보들의 공약들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의 주인은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 즉 시민들이다. 그런데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약은 나를, 우리 주민(시민)들을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인 객체로 항상 전제하고 있다. 과연 살기 좋은 지역사회,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인가? 지역의 주인인 주민들의 몫은 단지 좋은 정치인을 뽑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지역사회에서는 ‘마을만들기’라는 말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대구 삼덕동에서부터 시작된 ‘담장허물기’라는 마을만들기 프로그램을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참조하여 비슷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보니, 한 방송국에서도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담장 허물기를 추진하는 과정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사업은 마을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적으로 읍ㆍ면ㆍ동 사무소에 설치된 주민자치센터에서 ‘마을만들기’란 이름으로 여러 프로그램들을 시행하는 것도 마을만들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마을만들기를 주민편익시설 건립이나 환경개선사업 등으로 단순화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담장을 허물거나 빈 공간을 활용해 조그만 쉼터 등을 설치하는 것 자체는 주민들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이웃들 간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분명 공동체적인 마을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갈등이 줄어들고 주민들 간의 물리적 접근성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마을’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주민편익시설 짓는다고 ‘마을 공동체’ 만들어지나


▲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가 주최한 어린이날 잔치




‘마을’은 고정된 물리적 범주를 지닌 개념이 아니다. ‘마을’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지닐 때 형성된다. 따라서 ‘마을’이란 주민들의 공동체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범위에서 결정된다. 이는 ‘마을’이란 범위가 공동체적 범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단지 물리적 시설 몇 가지를 새로 만들고 개량하는 등의 행위로 만족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민들이 ‘우리 마을’이라는 공동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도록 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다.

광주에서는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라는 마을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 마을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민 지도자를 찾아내고 이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무엇을 만들기보다 주민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바로 마을만들기가 그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손에 의해 직접 수행되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소개한 대구 삼덕동의 ‘담장 허물기’도 단지 담장을 허무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주민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서울의 은평구 갈월동과 강북구 미아동에서도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마을만들기가 추진됐다.

쓰레기가 모여 있고 저녁에는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공간으로 변질된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이 모여서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뜻있는 인근 주민 몇몇이 모여 쓰레기를 치우고 담벼락을 예쁘게 꾸미는 등으로 놀이터를 개선했다.

주민들이 희망으로 일군 ‘마을 만들기’

그러나 이 사업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놀이터에 어린이 도서실을 설치하고 어린이 사생대회와 백일장 등을 개최하는 등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여름에는 동네 주민들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여름 밤의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마을이 단순한 물리적 시설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즉, 마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직접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상부상조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살기 좋은 마을은 몇몇 정치인들의 힘으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다. 아니, 마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지역 정치인들도 자기 몫을 충분히 해주어야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내가 다 해 줄 테니 너희는 나를 뽑아 달라’는 선거구호는 지역사회의 주인인 주민들을 주인이 아닌 객(손님)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에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 지역사회에서 보다 많은 권력(권한)을 갖고자 하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주민들을 대하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뒤에서 필요한 제도ㆍ행정ㆍ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치단체의 몫은 ‘주민 자치 마당’을 여는 것

이를 위해서는 마을의 구체적인 발전 계획, 만들고자 하는 것,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 등이 주민들의 입으로부터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주민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출된 그 욕구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광주 북구에서는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각 동별로 지역사회와 관련한 주민들의 욕구를 분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렇게 모아진 주민들의 욕구를 주민들은 다시 몇 가지로 압축하고 이의 우선순위를 정하였다. 그 순위를 바탕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어떤 근사한 물리적 시설을 만들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 그 과정을 주민들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자신들이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살기 좋은 마을을 스스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지역사회의 정치적ㆍ행정적 의사결정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지방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바로 그 독점된 의사결정과정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그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을 자신들의 권한을 활용하여 지원하는 것이다.

주민참여, 주민자치는 결코 구호나 선의의 약속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주민참여와 주민자치는 매우 복잡하고 번잡한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마을은 애초에 형성될 수가 없다. 마을이 형성되지 않는 지역은 공동체의 형성이 아니라 소수의 통치하는 자와 다수의 통치 받는 자로 구분되는 억압된 사회구조를 유지시킬 뿐이다.

주민을 진정 주인으로 대접하는 후보 뽑자

반면,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스스로 마을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일련의 계획이자 실천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지역주민들이 지역사회 주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후보들의 약속을 꼼꼼히 따져보자는 시민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한 따져보기에 있어 단순히 그 정책의 좋고 나쁨, 실현 가능성 등만 따지기보다는 그 공약 속에 과연 누가 주인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가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민들을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이들이 진정한 지역사회의 선량이 아니겠는가?


갈곡리공원의 명물 '타일벽화'의 특별한 사연, 도심 속의 마을만들기 그 전형을 찾아서

5월 24일 오후 6시경, 서울 은평구 갈현 1동 '갈곡리 공원'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을 기어오르는 아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엄마, 할머니들…. 평화로운 풍경의 배경에는 아주 특별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600여장의 '타일 벽화'. 그곳엔 손도장과 새, 잠자리, 아빠·엄마 모습 등 어린아이들이 붓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 새겨져있다. 갈현구판장, 덕일약국, 정일상회, 우리문방구, 심지어 이 지역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유리엄마까지 15센티미터의 정사각형 타일에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여기에 왜 이런 벽화가 만들어진 것일까?

"6년전에는 페트병이 담긴 마대자루, 부서진 장롱, 깨진 병, 찌그러진 깡통이 나뒹굴었습니다. 휴대용 부탄가스가 폭발하면서 나무가 타기도 했어요. 구청에서 사실상 야적장으로 쓴 거지요. 우리 아이들은 '고물상' 같은 놀이터에 쌓여있는 페트병 마대자루를 뒤로 밀치고 그네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한 엄마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어요."

열린사회시민연합 은평시민회 최순옥 사무국장(41)의 말이다. 이곳 주민이기도 한 최 국장은 2000년 3월경 동네 주민들에게 '이곳을 바꿔보자'고 제안했고, 갈현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4명의 엄마들이 모였다. 도심 속 '마을만들기'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아이 친구의 엄마와 지인, 동네 아줌마들을 설득했다. "데모하는 일도 아니고,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쓰레기장에서 놀도록 해야 하느냐"며 학부모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주변의 상인들도 나쁠 게 없었다. 그해 5월 '갈곡리공원 제모습찾기 주민모임'이 결성됐다.

어린이들을 상대로 '가고싶은 놀이터' 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개최됐고, 쓰레기장이 된 공원을 대충 치워놓고 그곳에서 '한여름밤의 영화제'가 열렸다. 주변의 깨끗한 공원 사진전도 개최됐다. 은평시민회는 은평지역 공원의 실태조사 등을 벌여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주민모임과 함께 쓰레기를 없애자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1주일만에 700여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구청은 그해 7월 놀이터에 야적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죠. 주민들의 분위기를 읽은 한 구의원이 '이번 기회에 놀이터를 개조하자'고 제안했고, 곧바로 1억원의 추경예산이 편성돼 이듬해 5월부터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갈공리공원 새단장도 다른 곳과는 달리 아주 특별하게 진행됐다. 구청측은 공사전에 주민의견을 수렴했고, 1차 설계도가 나온 뒤에 2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반영된 400여평의 갈곡리공원 설계도가 탄생했다. 공사는 2달만에 끝이 났다. 구청측은 마지막으로 공원 경계에 철망을 치려했으나, 주민들은 그 곳에 지금의 명물이 된 벽화를 그려넣었다.

"벽화만 없다면 어느 동네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입니다. 하지만 안티운동을 하던 기존의 시민단체 운동의 틀을 깨고 함께 마을을 만들어가는 '생산적인 운동'을 하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최 국장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갈곡리공원 제모습찾기 주민모임은 '갈곡리는 사랑하는 주민모임'(갈사모)으로 바뀌었다. 현재 갈현 1동 유아, 초등생,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들이 참여해 녹색가게를 운영하고, 각종 문화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공원 쓰레기 처리를 매개로 '마을공동체'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 김병기 NGO서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