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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바꾸는 열가지 희망 9 - 성평등 마을 만들기 (박신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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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8. 04:01
통계청이 지난 2002년 한국 여성들의 성차별 인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생활에서' 72.4%, '직장에서' 69.1%, '가정에서' 40.9%, '학교생활에서' 32.9%가 성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 취업 장애요인으로는 '육아부담' 38.8%, '사회적 편견, 차별적 관행 및 제도' 22.8%, '불평등한 근로여건'12.4%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사회는 더 열악하다. 여성운동의 노력에 의해 법과 제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지역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디다. 지역사회에는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주의,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한 인맥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뿐인가. 지역사회의 중요 정책결정 과정에 여성들의 참여는 매우 부진하다. 국회의원 비율은 13%가 넘었지만 광역 시·도의회 의원 중 여성은 9.2%(63명), 기초 자치구, 시군구의원 중 여성은 2.2%(77명)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에서 지방의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출직 후보 중 주요 4당의 여성후보자는 6.4%에 그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정치참여 30% 실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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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여야 여성의원들과 여성단체 '생활자치 맑은정치 여성행동'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지방선거 자치단체장 후보 중 최소한 10% 이상을 여성에게 공천할 것을 각 정당에게 촉구하고 있다.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각종 위원회 위원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주로 남성들이 맡고 있는 당연직 위원(지방자치단체장, 부단체장, 간부공무원)을 제외하더라도, 민간인 위촉 위원 중 여성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30%를 넘는다고 해도 여성발전위원회나 보육위원회 등에 대부분 몰려있다. 당연직 위원까지 포함했을 경우에는 여성위원 비율이 10~20%대에 머물러 있는 지역도 많다.
반면 성평등을 지향하는 여성단체들은 아직까지 지역사회 내에서 영향력이 미약하다. 지역내에 '여성단체연합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그 속에 참여하는 단체 중에는 성평등 지향성이 불분명한 곳(예를 들면 새마을 부녀회, 자유총연맹 부녀회 등)도 많다.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종속적이며, 여성들은 쉽게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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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여성의전화가 구청장 후보들에게 보낸 공약제안서 |
ⓒ 서울 여성의 전화 |
다양해지고 뿌리가 깊어가는 지역여성운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여성운동은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교육, 상담, 생협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대한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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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관련 예산이 주로 보육예산에 치우쳐 있고 여성 장애인, 빈곤여성 등에 대한 적극적 예산 배분이 부족한 상황이다.(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
2001년경부터 형성된 지역 여성운동의 또 다른 흐름은 성평등(또는 성인지적) 관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초창기에 '꽃아가씨 선발대회'같은 반성평등적 정책이나 사업들을 폐지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여성민우회, 여성의전화연합, 여성단체연합 그리고 각 지역의 여성운동단체들이 꾸준히 애쓴 결과 지자체에 여성발전기본조례, 보육조례와 같은 조례들이 제정됐다. 또 여성정책담당부서의 위상이 강화되고, 여성관련 예산이 증액되거나 여성발전기금이 설치되는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정책분석(모니터링) 작업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역자치위원회, 지역모임 등의 이름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정책을 회원들이 직접 분석하려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자치단체의 여성정책에 관한 중장기 계획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또 여성관련 예산이 주로 보육예산에 치우쳐 있고 여성 장애인, 빈곤여성 등에 대한 적극적 예산 배분이 부족하다. 이밖에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의 위상 미흡 또는 전문성 부족, 정책결정과정 여성참여 미흡, 성별분리통계의 부족 등이 지적되고 있다.
여성정책은 모두의 정책을 대변한다
실제 지역에서 여성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자.
95년 창립해 만 5년째 생협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서 여성민우회. 창립초기부터 '바른 의정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의정감시활동을 했었고, 지금까지 이 활동은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여성관련 예산이나 정책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구정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활동의 폭도 넓어졌다.
남서 여성민우회는 대중운동 여성단체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지역운동사례로 많이 회자됐던 학교급식운동의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 양천구 월촌중학교에서 진행된 학교급식운동이다. 이런 성공경험은 조직과 개인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부여했다. 그래서 이듬해 민우회 활동가 중 6~7명이 각 학교로 흩어져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학교 현장에서 설득하고 싸우기 위해서다. 월촌 중학교에서의 학교급식 개선운동이 주는 시사점은 지역운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활의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 작은 일이라도 성공할 때만이 부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급식운동을 통해 남서 여성민우회는 한 단계 성숙했다.
남성중심 지방의회 내 역학구도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여성발전기본조례가 부결된 것. 남서 여성민우회는 변호사와 함께 모범 조례안을 만들어 그것을 관철시키려 했다. 남서 여성민우회는 이를 통해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양성평등을 위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대체로 지방자치단체는 두루뭉술해서 그림은 그럴 듯하지만 책임질 일은 없는 그런 조례를 만들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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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여성정책은 우리가 바꿉니다'. 서울 여성의전화 '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에서는 '지역여성 리더십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워크숍에 참석한 여성들. |
ⓒ 서울 여성의 전화 |
남서 여성민우회 지역자치위원회에서 하는 일은 이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지역안에서 생활자치를 건강하게 하는 모임(생강모임)을 이끌고 있다. 해마다 양천구 여성정책과 예산 분석을 하고 그것에 대해 지역토론회를 한다. 환경, 교통, 교육 등의 주제를 조금이라도 삶의 형태나 제도와 연관시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주민과 더 밀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위한 활동
뿌리 깊은 성차별문화, 관행,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풀뿌리 운동도 활발하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주간이 성평등의 취지에 맞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여성의전화 나飛센터('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의 준말)는 2005년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여성주간 행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하고 우수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은 뿌리 깊은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성평등이 실현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여성의 역량강화(empowerment)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여성은 여성발전의 중심에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면서 주변적 존재로 살아 왔다. 그것은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성은 '삶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이 뛰어나며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다.
여성들이 삶 속에서 부딪치는 일상의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 나가고 여성의 역량강화를 통해 지역사회의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여 영향력을 높여나간다면 성평등이 실현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여성정책은 중장기 발전계획에 포함되어야 하며 중앙정부의 여성정책기본계획과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설계돼야 한다.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2004년 시행한 고양시 여성정책수립을 위한 연구조사를 기반으로 여성발전중장기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여성정책 담당조직도 복지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기획 분야로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기획, 인사, 예산 등 핵심적 업무들에 성평등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정에 실질적인 여성참여가 보장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각종 위원회의 여성비율을 전체 평균 40%(또는 위촉직 위원 기준으로 50%)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지방재정계획수립, 투자심사, 인사, 도시계획 등 지방자치단체의 핵심적인 위원회부터 적극적으로 여성비율을 늘여야 한다. 현재는 이런 위원회일수록 여성위원 비율이 낮은 게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여성들의 요구를 정책과 예산으로 반영해야 한다. 우선 지역여성들의 요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결과 드러난 지역여성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중장기계획도 수립하고, 예산도 반영해야 한다.
특정 사업에 대한 성별 여성평가도 실시해야
지자체 사업 중에서 일부분이라도 성별 영향평가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지적 정책형성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성별 분리통계도 작성하여야 한다.
여성정책관련 조례는 성평등 지향성(성평등 실현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는지)과 시민참여(여성정책의 수립과정에서 지역여성들, 지역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보장하고 있는지)를 기본방향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조례들이 제정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조례의 내용을 보면 성평등을 실현하기에는 미흡한 면들이 많다.
여성발전기본조례에는 ▲중장기 재정계획 수립 및 예산편성 시 성평등 실현예산 적극 반영 ▲정책수립 및 시행과정에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여 성차별적 영향제거와 성평등 증진정책 적극 수립 ▲정책과정에의 여성참여 확대 시행 ▲위원회의 시민참여형 민주적 공개 운영 ▲여성발전기금운영에 대한 시민의견수렴 등의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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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성의 전화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이 살고싶은 동작구 만들기'사업은 한국 여성의전화연합, 민들레 지역여성운동 사례발표회에서 1등인 민들레상을 받기도 했다. |
ⓒ 서울 여성의 전화 |
일반적으로 세력화는 자기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능력에서부터 사회적 조건에 대한 집단적 영향력을 증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까지를 의미한다. 풀뿌리 여성의 세력화는 정치적 세력이 부족한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과 환경을 증진·통제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지원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일상의 정치화가 필요한데, 여성들이 삶속에서 부딪치는 일상의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를 담은 아래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다양한 이슈들을 정치화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는 우리 삶의 조건을 스스로 바꿔가는 생활의 정치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지역정책과 예산을 꼼꼼히 분석할 것입니다. 여성정책이 여성들의 현실적 요구에 충실하게 계획되고 집행되는 지를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생활정치를 건강하게 만드는 모임 발족문 중에서, 2001·11)